자율주행이 자동차의 미래를 없앤다? 역설적인 진실

자율주행 기술이 완성되면 모든 사람이 자율주행차로 갈아탈 것이라고 흔히 예상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자율주행이 정말로 대중화되는 순간, 자동차 판매는 오히려 급감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사람은 왜 자동차를 사는가

합리적으로만 따지면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사람이 자동차를 살 이유는 사실 거의 없다. 대중교통은 촘촘하고, 택시도 언제든 부를 수 있다. 5천만 원짜리 차를 사느니 그 돈으로 10년 동안 매일 택시를 타는 편이 오히려 경제적이다. 주차비, 보험료, 유지비까지 계산하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차를 산다. 그것도 4천만 원, 5천만 원, 때로는 1억이 넘는 차를 기꺼이 구입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운전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자유 때문이다. 제네시스를 사거나 아반떼 N을 사는 사람의 심리는 “나는 직접 달리고 싶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자동차 구매는 처음부터 합리적 영역의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놀이동산 범퍼카가 말해주는 것

어릴 적 놀이동산에서 가장 타고 싶었던 놀이기구는 범퍼카였다. 수많은 놀이기구가 있었지만 유독 범퍼카에 끌렸던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직접 핸들을 꺾고, 내가 원할 때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는 유일한 기구였기 때문이다. 레일을 따라가는 다른 기구들과 달리, 범퍼카는 내 의지대로 움직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율성과 통제권을 갈망한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내 손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그 감각이 자동차 구매의 본질적 동기다. 자율주행이 이 감각을 빼앗아 간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원하던 자동차가 아니다.

자율주행차는 결국 택시와 구별되지 않는다

완전 자율주행 시대를 냉정하게 그려보자. 차는 알아서 운전하고, 나는 뒷좌석에서 책을 보거나 잠을 잔다. 이 상황은 택시를 탄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운전기사 자리에 AI가 앉아 있을 뿐이다.

게다가 내가 소유하는 순간부터 충전, 세차, 관리는 모두 내 몫이 된다. “어차피 자율주행이니 혼자 세차장 다녀오라”고 보낸다면, 그리고 “알아서 충전소 다녀오라”고 시킨다면, 그때부터 그 차는 내 차인지 렌터카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자가용과 택시, 렌터카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운전대도 없고, 내부 공간이 탁 트인 미니밴 형태가 훨씬 합리적이다. 실제로 테슬라가 로보택시 다음으로 로보밴을 공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자동차 한 대가 한 사람을 태우는 것보다, 10명 내외가 함께 타는 온디맨드 버스 형태가 도로 효율성 측면에서 훨씬 바람직하다.

자율주행이 열어젖힐 역설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자율주행을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자동차를 소유할 이유를 잃는다. “굳이 왜 사?”라는 질문이 자연스러워지는 순간, 자동차 판매량은 빠르게 줄어든다.

FSD 옵션만 해도 900만 원이다. 6천만 원짜리 차를 사서 택시처럼 쓰겠다는 선택은 대부분의 소비자에게 쉽지 않다. 결국 자율주행은 자동차 산업의 미래가 아니라, 자동차 소유라는 개념 자체를 지워버리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 자동차 세일즈는 원래부터 비합리적 영역이었기에, 합리성이 강조되는 순간 시장은 무너진다.

그래도 손으로 운전하는 차는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손으로 직접 운전하는 자동차는 의외로 오래 남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기마 시대부터 내려온 본능이 있다. 적토마를 타고 달리고 싶은 욕구, 내 능력을 기계의 힘으로 확장하고 싶은 욕망이다.

평범한 사람의 출력은 1마력도 되지 않지만, 600마력짜리 차에 올라타는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시속 100km까지 3초 만에 도달하는 경험은 인간 본연의 한계를 뛰어넘는 쾌감이다.

건담이 로봇이 아니라 ‘모빌 슈트’로 불리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탑승자의 능력을 확장하는 외골격이기에 조종사의 실력이 중요한 것이다. 자동차도 그 연장선에 있다. 조종간을 남에게 넘기는 순간, 그 로망은 무너진다.

미래는 한 치 앞도 모른다

1970년대 달 착륙 직후, 사람들은 “곧 달로 수학여행을 가게 될 것”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길이 한번 뚫렸으니 왕래가 잦아질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웃음이 나오는 예측이다. 마찬가지로 “10년 후에는 아무도 직접 운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훗날 비슷하게 회자될 가능성이 있다.

자율주행 자전거나 자율주행 오토바이가 나온다고 해서 기존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사라질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페달을 밟을 필요도, 균형을 잡을 필요도 없는 자전거를 과연 자전거라 부를 수 있을까.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은 분명히 올 미래다. 그러나 그것이 자동차의 유일한 미래라고 단정하는 것은 오산이다. 직접 운전하는 즐거움, 소유의 로망, 기계와 한 몸이 되는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율주행이 보편화될수록, 손맛이 살아 있는 자동차의 가치는 역설적으로 더 빛날지도 모른다.